우리 국민들은 지난해와 올 겨울을 헌법을 수호하기 위해 촛불을 들고, 헌법 지키기 위해 싸웠다. 국민들은 광화문 광장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조항을 골백번도 더 외쳤다.

▲ 제헌절 69돌을 맞는 17일 국회 본청 중앙홀에선 제헌절 기념행사가 열린다.

오늘은 7월 17일 ‘제헌헌법’을 제정·공포한 것을 기념하는 제헌절이다. 올해로 벌써 69주년을 맞는 제헌절이다. 하지만 광복절 삼일절과 함께 제헌절이 국가의 큰 명절임에도 유독 제헌절만은 국가 경축일에서 다소 ‘왕따’를 받는 느낌이다. 우리 국민들은 지난 광장촛불 혁명기를 겪으면서 헌법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하지만, 오늘이 바로 광장에서 목놓아 외쳤던 헌법의 날인 제헌절이라고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심지어 제헌절이 국가의 가장 큰 경축일임에도 국가공휴일로 제정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일이다.

제헌절은 지난 1948년 7월 17일 대한민국 초대 의회에서 헌법이 제정됐고, 이듬해 10월 ‘국경일에 관한 법률’에 의해 제헌절은 국경일이 됐다. 다시 이듬해인 1950년 제헌절은 법정공휴일로 지정됐고, 주 5일제가 시행되던 지난 2008년부터 공휴일에서 제외됐다. 제헌절의 수난사가 아닐 수 없다.

현재 법으로 정한 5대 국경일은 삼일절과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 가운데 유일하게 법정 공휴일이 아닌 날이 바로 제헌절이다. 앞서 한글날이 1970년 법정공휴일로 지정됐다가 “휴일이 너무 많다”는 경제단체의 항의를 정부가 받아들이면서 1990년 노태우 정부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한글날은 다시 관련 단체 등의 끈질긴 요구 끝에 2006년 노무현 정부에서 법정공휴일로 다시 지정됐다. 한글날의 의미와 명예를 되찾은 거다.

박근혜 정권이 파면되고 첫 제헌절을 맞는 의미를 더욱 새롭다. 우리 국민은 헌법이 법치국가의 통치 조직 및 운용의 근간을 규정하는 법이라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국민들의 기본 권리를 밝힌 최고법을 박근혜라는 일 개인이 뭉개버린 거다. 한국의 헌법은 또한 일반 법률과 충돌할 경우 상위법으로서 우선적 지위를 가진다. 헌법은 기록으로 법전을 둔 성문법이고, 개정 절차가 까다로운 경성헌법이 바로 헌법인데, 바로 헌법을 만든 이날이 제헌절이다.

우리나라 헌법은 지금까지 69년을 보존해오면서 시대와 사회 변화에 따라 9차례 개정됐고, 현행 헌법은 1987년 항쟁의 결실로 개정된 제10호 헌법이다. 6공화국 헌법 87년 헌법이라고도 불린다. 전문과 10장 130개조, 부칙 6개조로 구성돼 있으며,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사회국가(복지국가)의 기본 원리를 담고 있다. 제헌절에 반드시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할 대목이다.

제헌절에 헌법 제정으로 우리나라는 비로소 신생 독립국가이면서 자주독립국가의 면모를 갖추었다. 때문에 제헌절은 대한민국 헌법으로 국권을 회복한 것을 확인하는 날이됐다. 제헌절 공포된 헌법을 기반으로 삼아 그해 9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탄생했다. 하지만 이런 깊은 의미에도 불구하고 언제부터인가 제헌절의 축하 분위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당장 달력에서 7월 17일은 더 이상 빨간날도 아니다. 10여 년 전부터 법정공휴일에서 빠져버리면서 한 단계 낮은 국경일이 돼 버렸다. 심지어 제헌절의 의미를 모르는 대학생들도 적지 않다.

제헌절날 제정된 우리나라 헌법은 69년을 이어오면서 많은 수난사가 있었다. 건국 이후 법 위에 군림하는 독재 권력 탓에 헌법 자체도 자주 유린당했지만, 그 이념과 지침은 온전하게 지켜진 때가 드물었다. 제왕적 대통령은 삼권분립의 원칙 위에 군림했고, 행정의 합법률성 역시 법보다 권력자의 의중에 충실했던 자들에 의해 정당한 잣대가 되지 못했다. ‘인간다운 생활’ 등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권리 역시, 아직까지도 머나먼 이상에 가깝다. 제헌절이 결코 온전한 국가적 축제의 날이 되지 못하는 이유다.

지난 2005년 노무현 정부가 제헌절을 식목일과 함께 법정공휴일에서 제외한 것은 (제헌절 공휴일 제외 시행은 ‘부칙’에 따라 2008년부터)은 주 5일제를 시행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재계는 주 5일제를 시행하게 되면 국가 경제가 붕괴된다며 강력히 반발했고, 이를 무마하려는 의도로 일부 공휴일을 제외시켰다. 제헌절이 그 속에 포함됐다. 하지만 당시에도 한국인 노동시간은 OECD 국가 중 압도적인 1위였고, 현재도 멕시코 등과 1~2위를 다투고 있다.

일본의 헌법기념일(5월 3일)은 법정 공휴일이고, 미국의 제헌절(시민권의 날, 9월 17일)은 법정 공휴일이 아니다. 공휴일 지정 유무가 헌법의 위상을 보여주는 지표일 수는 없지만, 여러 날 중 제헌절을 찍어 공휴일에서 제외시킨 건 다른 문제다. 제헌절은 국가가 국민을 일 시키며 인간다운 삶을 이야기하는 날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와 국교를 맺고 있는 주요국들의 제헌절은 어떠한가? 인접국 일본과 미국, 덴마크, 태국 등 헌법이 있는 대부분의 나라들은 헌법을 제정한 날을 국가 기념일로 지정해 공휴일로 지내고 있다. 대만과 같은 경우 제헌절과 성탄절이 겹쳐 더 떠들썩하게 쉰다. 1946년 12월 25일 입법원에서 ‘중화민국 헌법’을 제정했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들은 지난 3년 헌법을 유린해가며 과거 독재 시절로 나라를 돌리려는 한 인간을 보며 공분했다. 하지만 헌법의 가치를 지키려는 1700만 촛불 민심은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대규모 집회를 이어갔고, 헌법의 정신을 받들어 헌법을 유린하는 권력을 끌어내렸다. 때문에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제헌절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뜻이 깊다.

제헌절 공휴일 축소를 요구한 재계가 이번에는 임시공휴일을 주장하고 있지만, 제헌절을 공휴일로 지정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범 국민적 저항이 헌법에 기반한 촛불 혁명이었음을 인식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제헌절이 공식국경일로 지정하고, 촛불혁명의 의미와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삼은 헌법적 가치를 되새기는 날로 삼자는 것이다. 제헌절은 마땅히 온 국민이 기념할 수 있는 국가 경축일이 돼야 한다.

[한인협 = 박귀성 기자]